내일신문 경북

청와대 경내 석불좌상 경주시로 반환 요구

내일신문 전팀장 2017. 8. 22. 11:16


청와대 경내에 석불좌상 1좌가 있다. 공식 명칭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4호이지만, ‘청와대 부처’ 또는 ‘미남부처’ 로 불리기도 한다.


이 석조좌상은 1912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합병된지 2년 뒤인 1912년 경주를 찾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에 의하여 서울로 옮겨졌다. 총독은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인 오히라 료조(小平亮三)라는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이 불상을 처음으로 만났고, 총독이 이 불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눈치챈 오히라는 서울 남산에 있었던 총독 관저로 이 불상을 옮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게 된 이 불상은 1927년 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다시 자리를 떠나 현재의 청와대 경내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불상은 구중궁궐과도 같은 청와대 경내에 갇혀있다 보니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맣게 잊혀졌다. 이 불상은 1967년 4월 30일 조선일보 보도를 통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 불상의 존재가  세인(世人)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94년이었다. 당시 구포역 열차전복사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 서해페리호 침몰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같은 대형참사가 잇달아 일어나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경내의 불상을 치워버린 것이 원인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청와대는 고심 끝에 그 해 10월 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불상이 제자리에 있음을 공개하게 되어 처음으로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부처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당연히 “경주시로의 반환” 문제도 수면(水面)위로 떠 오르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 벽두부터 경주시의 문화재 전문가들과 문화단체들은 언론매체를 통하여 석불좌상의 존재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경주시로의 반환운동을 경주시에 꾸준하게 요청하였다.


석불좌상의 경주시로의 반환 문제는 경상북도의회에서도 거론되었다. 2014년 11월 14일의 행정사무감사 문화환경위원회회의록에 따르면 이 문제를 거론한 이는 경주시 출신의 이진락 도의원이었다. 그는 경주시의 3선 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경주의 문화단체들과 함께 계속 경주시에 “경주시로의 반환”을 거론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경상북도가 나서 줄 것을 요구하였다.

 

2017년 8월 21일 지방분권운동대구경본부(이하 대구경북본부) 운영위원회에서는 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이하 구미본부), 경주본부 준비위원회는 26만 경주시민 · 270만 경북도민 · 250만 경북도민과 함께 석불좌상의 경부시반환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고, 뜻을 같이 하는 대구와 경북의 모든 단체들에 공동대응을 제안하기로 하였다. 


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
구미근현대사연구모임
지방분권운동 경주본부준비위원회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문화분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