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희망원 반납사유서
작년 6월 전석복지재단이 희망원을 수탁한 이후, 꼭 1년이 되어가는 시점입니다.
참으로 길고 힘든 1년이었습니다.
당시 희망원은 어느 법인도 수탁하지 않으려 한 곳입니다.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사회의 냉혹한 눈길에 그야말로 초토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시설을 책임지겠다는 것은 매우 험한 가시밭길로 들어서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희망원을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또한 지역사회 공동의 인식이었습니다. 전석복지재단은 이러한 명분으로 사회복지계의 동의를 얻어 희망원을 수탁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원 운영을 결정하면서 거주인들의 안정과 삶의 질 향상, 종사자들의 근무환경개선과 처우에 대한 보장, 현실가능한 운영체계마련으로 인권유린의 현장이 아닌 참사회복지의 실천현장으로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희망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던 시설이고, 인권유린과 비리·횡령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보는 시선이 많기에 내·외부적으로 많은 압박이 존재합니다.
무수한 압박 속에서도 시설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준 희망원 종사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침착하고 의연하게 잘 운영해주었습니다.
희망원 종사자들은 오로지 희망원 거주인들의 인권과 안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작년 11월, 대구시는 지도점검이라는 미명하에 운영의 방향성을 잃게 하였습니다.
대구시는 전석복지재단이 희망원을 수탁한 지 5개월 만에, 22명의 합동점검반을 꾸려 5일간 지도점검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32건을 지적 하였습니다. 게다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지도점검 자료가 유출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모단체는 이번에도 역시 ‘인사실패’와 ‘운영실패’를 거론하며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상황을 알지 못하는 분들은 희망원과 전석복지재단을 비난하고 나서는 상황입니다. 일부 희망원 직원까지도 동요하며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전석복지재단 대표이사로서 결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영남일보의 보도내용은 비리를 이야기했지만 대구시의 지적은 일의 절차나 규정에 대한 이견이었습니다.
전석복지재단이 희망원을 수탁한 후 기존 운영규정의 개정 필요성을 인식하여 대구시에 운영규정을 수정하여 제출하고 승인을 요청하였으나, 지금까지도 대구시가 이를 승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전 규정을 따라야 하는 것이 마땅한 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만약 새로운 규정이 승인되기 전에 과거의 규정을 어기고, 자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시행했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영남일보는 이것이 마치 큰 비리라도 되는 양, 신문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대서특필하였습니다. 보도내용에는 대구시가 지도점검 결과로 보낸 공식문서에 담겨있지 않은 내용도 있었습니다. 희망원 시설장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사회복지현장을 바라보는 대구시의 무책임한 입장과 사실관계 확인 없이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는 기자에 의해 희망원은 또 다시 비리시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비단 전석복지재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복지계는 보조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행정기관과 언론기관에 항상 ‘을’의 입장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대구시 사회복지계 전체가 공무원과 기자의 무책임한 행위로 인해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하기에 사회복지계가 힘을 모아 ‘사회복지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서 공동대응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회복지공동대책위원회는 오늘 공청회(5.16)를 통해 이 같은 상황을 명백하게 밝히려고 했습니다. 희망원이 5개월 동안 저지른 비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밝혀보고자 했습니다. 과연 신문에 대서특필할 만한 내용인지, 과연 비리에 해당하는지 시민들 앞에서 당당히 따져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밝혀야 할 영남일보와 대구시는 오늘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문제제기만 할 뿐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희망원 운영진은 거주인들의 인권과 안전,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행정적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전석복지재단은 희망원 문제해결과 변화를 위해 대구시와 함께 방향을 찾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적극적 지원과 협조는 고사하고, 희망원의 안정화를 위한 고민과 소통을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희망원 거주인들과 종사자를 위해 해결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어려움조차 협의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근무와 관리 인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거주인들의 인권보호와 안전을 위해서는 24시간 근무체계가 필요했으며, 인력충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대구시는 이 요구에 대해 시종일관 원론적인 입장만을 고수 하였습니다.
“시민마을(장애인 거주시설)이 폐쇄되면 그 직원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며 인력충원에 난색을 표한 것이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갑니다.
직원들이 혼자 야간근무를 서게 되면서 강한 업무 부담과 동시에 종사자들의 인권도 안전도 보장되지 못하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협의는 제기조차 할 수 없습니다. 혁신을 하라는 대구시가 정작 혁신을 반대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거주환경의 개선 없이는 인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 지원요청에도 인권유린 시설은 기능보강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점검을 나온 합동점검반은 ‘인권상황이 개선된 여지가 없다’고 합니다. 희망원의 일련의 사태로 후원자가 모두 떠난 상황에서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거주환경의 개선이 과연 가능한 것입니까? 이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안전사고는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이 뿐만 아니라 희망원 거주인들을 위한 크고 작은 사업의 승인이 지체되거나 의견을 거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노사간 화합, 종사자의 고용안정에 대한 구조적인 난재가 있습니다.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종사자간에도 임금과 처우가 달라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운영진은 시설 간 다른 급여체계를 보건복지부 생활시설 기준으로 단일화해 줄 것을 수없이 요청하였으나 수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나 경력에 부합하는 인사구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구시 공무원 점검반의 강압적 점검태도에 유감을 표합니다.
직원들을 불러다가 질타하며 모욕감을 주고, 퇴사한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시설장의 비리를 캐묻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투서를 빌미로 몰래 직원을 따로 불러서 질문하거나 확인하는 것이 지도점검의 행태였습니다.
거주인들을 위해 희망원의 직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점검하지 않고, 투서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했습니다.
대구시 지도점검에서 6명의 직원들이 임금을 삭감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희망원 관리자들은 이들의 임금보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나 대구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직접 대구시를 항의방문하자 이를 수용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렇듯 대구시는 일방적인 결정으로 운영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임과 권한이 함께 부여되어야 관리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원의 최대 화두는 탈시설과 슬림화입니다.
탈 시설은 단기간에 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닙니다. 거주인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탈시설이 가능한 지역 환경과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원 종사자의 노력으로 시민마을에서 12명, 아름마을에서 40명의 거주인들이 지역사회로 복귀하는 등 탈시설과 슬림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희망원 흠집내기만 만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전석복지재단이 희망원을 오래도록 운영하려고 술수를 쓰는 것 아니냐는 매도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제 희망원의 수탁법인인 전석복지재단 대표이사로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대구시가 지금의 전석복지재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희망원의 종사자들은 그동안의 노력과 헌신이 폄훼되는 것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운영진들도 전문성과 리더십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운영법인인 전석복지재단 또한 희망원의 혁신적 운영과 정상화를 위한 대구시와의 파트너십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동안 전석이 지향한 희망원 거주인들의 사회적 보호와 삶의 질을 보장하려던 정상화과정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석복지재단 대표이사로서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전석복지재단은 희망원의 운영권을 대구시에 반납합니다.
대구시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반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절차를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2018. 5. 16
사회복지법인 전석복지재단 대표이사 정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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