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경북

인재 최현 박약회 전국총회 구미코 상주대 김기탁 前 총장 발표

내일신문 전팀장 2017. 9. 20. 16:40

인재 최현 박약회 전국총회 구미코 상주대 김기탁 前 총장 기조 발표

 

 

2017년 9월 23일 구미코(구미시 양포동)에서 박약회(博約會) 전국 총회가 열린다.
박약회는 대한민국 고유의 유학문화를 연구 · 계승 · 보급하며, 이를 현대화 · 생활화하여 선현의 숭고한 이념을 오늘에 되살려 실천함으로써 현 실정에 맞는 유학문화 창달 · 계발 · 계도'를 목적으로 2003년 7월 25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3가 127 명륜빌딩 405에 있다.

 

초대회장은 물리학자 김호길(金浩吉, 1933~1994)이며, 현 회장은 이용태(李龍兌) 전 삼보컴퓨터 회장이다.

 

이 날 총회에서 김기탁(金基卓) 전 상주대 총장이 “訒齋 先生의 儒賢에 대한 闡揚과 尊賢意識- 一善志와 琴生異聞錄을 中心으로” -가  발표된다.
琴生異聞錄은 琴生(=崔晛)이 꿈속에서 정몽주(鄭夢周, 1337~1392)를 모시고 길재(吉再, 1353~1419) · 김종직(金宗直, 1413~1492) · 정붕(鄭鵬, 1467~1512) · 박영(朴英, 1471~1540)의 4현과 김주(金澍, 1355~?) · 하위지(河緯地, 1412~1456) · 이맹전(李孟專, 1392~1480) · 김숙자(金叔滋, 1389~1456) 등 노사(老師) 4인과  박운(朴雲, 1493~1562) · 김취성(金就成, 1492~1551) 등  처사(處士) 2인 모두 10명에 이르는 구미의 명현(名賢) 들과 수양의 도를 논했다는 내용의 한문소설이다.

 

인재(訒齋) 최현(崔晛, 1563~1640)은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과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제자이다. 학봉은 영남에서 큰 학맥을 형성하였고, 한강 정구의 학맥은 기호(畿湖)로 가서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으로 연결되어 실학의 꽃을 피우는 토양이 되었고, 마침내 근대의 문을 얼었다.

 

한강 정구는 부임하는 고을마다 영가지(永嘉誌, 조선시대 경상도 안동부의 읍지)를 비롯한 읍지를 만들었다. 이들 읍지의 발간은 실학(實學)으로 가는 길목이라 할 수 있다. 一善志는 이러한 실학적 관점에서 저술된 것이다.  

 

一善志는 구미문화원에서 이미 국역되었으나 인재선생의 문집을 비롯한 많은 글들이 번역되지 못 한 상태에 있다. 뿐만아니라 선생은 松江 鄭澈(1536∼1593), 蘆溪 朴仁老(1561~1642), 孤山 尹善道(1587~1671) 등과 함께 한글로 가사를 쓴 조선의 4대 가사문학가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 구미근현대사연구모임, 訒齋 崔晛先生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지난 9월 7일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와의 간담회에 이어 9월 8일 남유진 구미시장,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인재(訒齋) 최현(崔晛)선생의 충절과 실천적 유학정신을 기리기 위한 규모 있는 기념사업의 추진을 제안하였다.

 

또한 訒齋 崔晛先生기념사업회에서는 9월 18일 경상북도 도청을 방문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도청관계자는 “구미시의 요청과 기념사업에 대한 기초용역을 추진한다면 경상북도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혀서 이에 따른 구미시의 입장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제안서
아래는 9월 7일 지방분권운동본부와 인재선생기념사업회 대표가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와의 간담회에서 재출한 재안서의 관련 내용이다. 9월 8일 남유진 구미시장,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에게도 같은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일선지(一善志)를 저술한 訒齋 최현(崔晛, 1563~1640) 선생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야야 하고 평가에 걸맞는 기념사업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선생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승(季昇), 호는 인재(訒齋)입니다.

 

만약 일선지(一善志)가 없었다면 고려 말에서 조선 중기까지 이르는 시기의 구미와 선산의 역사는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졌을 수도 있읍니다. 그런데도 정작 고향인 구미에서의 선생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 짝이 없읍니다.

 

寒岡 鄭逑(1543∼1620)의 제자인 선생은 실로 조선 실학의 개척자였읍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한강선생은 지방관으로 부임한 곳곳에서 永嘉誌(안동)를 비롯한 읍지(邑誌)를 저술하였읍니다. 일선지의 저술은 인재선생이 스승의 뜻을 따라 분명한 실학적 관점을 가졌다는 움직일 수 없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어찌 빛나는 미래가 있겠읍니까?

 

또한 선생은 松江 鄭澈(1536∼1593), 蘆溪 朴仁老(1561~1642), 孤山 尹善道(1587~1671) 등과 함께 한글로 가사를 쓴 조선의 4대 가사문학가의 한사람 입니다. 訒齋續集에 수록된 明月吟과 龍蛇吟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래는 이에 대한 국어국문학자료사전의 내용입니다.

 

용사음의 처음 "내 타신가 뉘타신고 /天命인가 時運인가 /져근덧 사이에 /아무란 줄내 몰래라 /百戰乾坤에 /治亂도 미상(靡常)고 /南蠻北狄도 /녜브터 잇건마 /慘目傷心이 /이대도록 돗던가"로 시작하여 급작스럽게 전란을 당한 황황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어서 임진왜란 초기 각처에서 창의한 의병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그 충렬을 흠모하고, 이들이 왜적에게 짓밟혀 빼앗겻던 땅을 회복함을 기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꾸밈없는 질박한 어휘로 우국애민의 충정을 곡진하게 잘 표현한 작품이다.

 

<명월음>이 구름에 가려진 달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한 서정적 작품인 데 반하여, 이 작품은 전란의 와중에서 어지러운 현실을 바라보는 비분강개가 잘 나타나 있다

2017년 9월 23일 博約會 전국총회가 구미에서 개최됩니다. 이날의 총회에서 전 상주대 총장 김기탁 교수가 訒齋선생이 쓴 琴生異聞錄에 대하여 발표합니다. 다음은 금생이문록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내용입니다.


금생이문록(琴生異聞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칭별칭 금오몽유록
1591년(선조 24) 최현(崔晛)이 지은 한문소설.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처음 제목은 ‘금생전(琴生傳)’이다. 1591년에 작품의 초를 잡아 박순백(朴純伯)에게 보여주고 나서 임진왜란 중에 초고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순백이 기록하여둔 것을 뒷날 ≪일선지 一善志≫를 편찬하면서 부록으로 싣게 되었다고 작품 말미에 전한다.

 

작품 끝에는 蒼石 李埈(1560∼1635)의 발문이 있다. 몽유록계의 작품으로 금생이 꿈에 영남 금오산(金烏山)을 중심으로 한 충신과 의사를 만난 일을 서술하여 영남사림파의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금생은 늘 큰 이상을 품었다. 그래서 유적과 명산을 두루 돌아보고, 충신 · 열사의 사당을 만나면 경배하고 시를 지어 그 뜻을 기리리라 생각하였다. 어느날 서책을 베개삼아 누웠다가 꿈의 세계로 가게 된다. 그윽한 곳에 이르니 세 기둥을 한 집이 있었다. ‘청풍입나지문(淸風立懦之門)’이라 쓴 현판이 있어 들어간다.

 

안에는 길재(吉再) · 김종직(金宗直) · 정붕(鄭鵬) · 박영(朴英) 등이 있었다. 금생이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 정몽주(鄭夢周)가 이르자 모두 나가 맞이하고 제자의 예를 올렸다. 뒤에 네 선생이 노사(老師) 4인과 처사(處士) 2인을 청하자 김주(金澍) · 하위지(河緯地) · 이맹전(李孟專) · 김숙자(金叔滋) · 박운(朴雲) · 김취성(金就成)이 이른다.
각각 정좌하고 난 뒤 정몽주가 학문과 수양의 도를 설하였다. 모두 머리 수그려 재배하고 다시 도덕과 나이순으로 자리를 정하여 앉았다. 술을 두어 차례 마시니 금생이 자청하여 <풍입송 風入松> 한 결을 켜자 정몽주가 시로 화답하였다. 그 가사는 문왕과 무왕을 그리워하고 후세인에게 공도(公道) 회복을 기대하는 내용이었다.

 

시회를 마치자 모두 흩어져 가고 금생만이 방황하다가 깨어보니 배 안이었다. 산 아래에 충신묘가 있다고 하여 가보니 사당 안에 네 선생의 위차(位次)가 있어, 꿈에 본 것과 같았으나, 네 노사와 두 처사는 없었다. <금생이문록>은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과 같이 소설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였다.\

 

그러고 선산 지방의 인물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영남사림파의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였으므로 다른 몽유록계 소설에 비해 주제가 약화되었다. 유가적 도덕률과 수양과 학문을 제재로 하여 등장인물을 통해 그 교훈성을 설파하도록 만드는 등의 소설적인 면모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일선지(一善志)』
『한국고전소설연구』(김기동, 교학사, 1981)
「금생이문록-몽유록계소설의 신자료-」(홍재휴, 『경북대학교사범대학국어연구』 2, 197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저자/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로고 http://www.aks.ac.kr
 
박약회 전국총회를 통하여 구미와 경북 나아가 전국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충절과 선각자로서의 삶이 소개될 수 있도록 경상북도의 노력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상북도에서 이를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에 알려 주시고, 아울러 구체적 기념사업계획을 수립해 주십시오.
8월 25일과 26일 전국 분권운동가모임 후 고산 윤선도의 생가와 기념관에 들렀는데, 그 규모의 방대함과 섬세한 자료정리, 관광자원으로 연결시킨 해남군의 기획은 단연 발군이었읍니다.

아, 슬픕니다. 인재선생의 본가는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고, 13세 주손(冑孫) 운파 최관호는 전재산을 기울여 독립운동에 종사하였으나 탐욕에 물든 못된 사람의 무고(誣告)로 인하여 해방된 조국에서 1946년 “十月의 폭풍”이 몰아치는 와중에 비명횡사(非命橫死)하였읍니다. 지사님의 각별한 관심으로 그의 누명이 벗겨져 독립운동가로 서훈되기를 기대합니다.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라도 더 발굴하여 그 생애를 기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 하나라도 더 찾아내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꼭 실현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그리하여 역사가 올바르게 정립되고 민족정기가 날로 새로와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2017년 9월 20일

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
지방분권개헌추진경북도민회의 구미준비모임
지방분권개헌추진구미시민회의 추진위원회
구미근현대사연구모임
인재최현선생기념사업회
운파최관호선생추모사업회

연락처: 지방분권운동구미본부 김종길 상임대표: 010-5476-1720 
        나대활 공동대표(구미YMCA 사무총장) 010-6612-4001
        류호일 공동대표 010-3540-1905  
        이수태 사무국장 010-4377-7575
        최세훈 인재 최현선생 15세 주손(冑孫) 010-2795-3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