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간 내일신문

[강호순-과학수사]싸이코패스 강호순 범죄에서 검거까지 사건파일

내일신문 전팀장 2011. 5. 28. 09:32

[강호순-과학수사]싸이코패스 강호순 범죄에서 검거까지 분석파일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 CCTV에 찍힌 차량 5만7천여대를 분석하다

[강호순 연쇄살인사건=한국의 과학수사] 강호순 사건의 피해자 오빠가 경찰시험에 합격, 경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경찰이 되면 강호순 사건 파일을 다시 열어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과학수사는 어느 수준일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생긴지 50년이 됐고 각 경찰청에는 과학수사요원으로 활동한지 15년이 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예산 노부부살인 사건처럼 그동안 대조식별이 어려웠던 지문대조가 이제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순식간에 처리되는 수준으로 올랐다. 혈흔 DNA 지문 검시 족윤적 감식 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시신주변 물체, 매장토양을 통한 사건발생 시간 확인, 프로파일링을 통한 범인행동양식 파악 등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개별 사건에서 과학수사가 그늘에 가려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를 각 사건을 통해 연재해 독자들로 하여금 수사의 이해를 돕고, 동시에 치안에 대한 불안을 줄이고자 한다.

 

 

경기경찰청은 여성실종사건이 3건 연속 접수되자 바짝 긴장했다. 2007년 1월3일 밤 박정자(가명 50)씨 가족은 박씨가 회사 퇴근 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신고했다. 박씨는 화성시에 있는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경리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실종된 것이다. 연말연초 비상경계령을 내렸던 경기청은 실종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경기청 관내 경찰서에 연말에 접수돼 있던 부녀자 실종사건에 대한 보고가 경기청으로 올라왔다. 모두 3건이었다. 박정자씨는 회사원이었고, 배경미(가명 50세), 박성아(가명 36세)씨 등 2명은 노래방도우미였다. 그런데 3명의 실종자 휴대폰이 꺼진 곳이 모두 경기도 화성시였다. 경기청 과학수사계 이상훈 경위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이 경위는 “하필 화성에서 연쇄실종이라니”라고 말하며 이유라 경장과 눈짓을 주고 받았다.

 

실종자는 3명만이 아니었다. 1월 6일 김해영(가명 37. 노래방도우미), 1월 7일 연미영(가명 19. 학생)씨 실종신고가 들어왔다. 연씨를 제외하고는 4명 모두 마지막 휴대폰이 꺼진 곳이 화성시였다(연씨는 수원에서 휴대폰이 꺼졌다). 연씨가 실종된 날은 몹시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그녀는 토요일 성가대 연습을 위해 성당을 다녀오는 길에 수원시 금곡동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됐다.

 

경기청은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박정자씨가 실종된 지역인 군포 경찰서에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총 참여인원은 경찰만 179명이었으며 전경도 여러 부대가 동원됐다.

경기청은 광역수사대를 중심으로 실종자 찾기 수사에 돌입했다. 실종자 주변을 탐문하고, 인근에 거주하는 성폭행 전과자를 중심으로 우범인물에 대해서도 탐문했다. 실종자가 마지막 사라진 곳을 중심으로 인근 도로에 설치된 모든 CCTV확인에 들어갔다. CCTV에 잡힌 총 5만여 대의 차량을 일일이 검색했다. 차주와 차량의 행적을 탐문하며 몇날며칠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수시로 밤을 새웠다. 전경을 동원해 휴대폰이 꺼진 지역을 중심으로 야산 저수지 등에서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고 동일 시간대 범죄예상 구역에서 사용된 휴대폰 수 만여 대도 기지국을 통해 일일이 확인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실종 124일째 첫 시신을 찾다

그런데 박성아씨 실종 124일째인 5월 8일 안산시 사사동 야산에서 벌목을 하던 공원들이 낮 12시쯤 시신을 발견했다. 실종자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느낀 과학수사계는 계장을 포함한 2팀원 5명과 범죄분석요원 등 8명이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30분이었다. 야산 경사면 맨 아랫부분에 매장돼 있던 시신이 동물에 의해 파헤쳐져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었다.

 

현장은 먼저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서 노란색 경계선이 쳐져있고 출입이 봉쇄돼있었다. 과수팀은 현장감식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크린가드(비옷처럼 생긴 모자 달린 외투)를 입고 신발캡과 머리캡을 착용하고 목장갑을 꼈다. 그리고 시신 감식용 라텍스 장갑도 챙겼다. 우선 현장주변을 정밀 촬영했다. 현장은 쓰레기 무단투기장이었다. 온갖 쓰레기가 방치돼있고 폐닭을 버려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닭 냄새 때문에 시신이 부패할 때 나는 냄새가 가려진 것 같았다.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됐지만 실종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추운 겨울에 살해돼 매장되다보니 부패가 더뎌진 것이었다.

 

겨울이라 땅을 깊이 파지 못하고 매장해 눈이 녹고, 언 땅이 풀리는 과정에서 시신이 일부 드러났고 이를 본 동물들이 달려들어 사체를 훼손한 것이었다. 시신이 매장된 곳은 국도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야산 등산로 옆 구릉지 경사면 맨 아랫부분이었다. 범인은 경사면 맨 아래에 매장하면 흙이나 이물질이 퇴적될 뿐 파이지 않는다는 계산을 하고 매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시신이 드러난 것이다. 이 경위는 구덩이를 얕게 판 것으로 보아 범인이 게으른 놈일 것이라 추측했다.

 

사체은폐 위해 경사면 아래 매장

시신은 발가벗겨진 채 다리를 오그리고 있었다. 사후경직이 꽤 진행된 상태에서 매장한 것이다. 범인이 시신을 차에 싣고 다녔다는 반증이다. 목은 스타킹으로 감겨있었고 양 손도 뒤로 한 채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팔찌와 목걸이 등 장신구는 그대로였다. 금품이 목적이 아니라 성폭행이 목적이었음을 말해줬다. 두개골이 파손 돼 있었다. 머리를 흉기로 내리친 흔적이었다. 사체에서 표본을 채취해 국과수로 보내 긴급감정을 의뢰했다. 실종자들의 DNA는 그들이 사용하던 물건이나 머리칼에서 이미 확보해둔 상태였다.

 

이어 주변에 흩어져있는 폐차된 차량, 범퍼 등 자동차 부품들, 버려진 팬티 등 옷가지를 모두 수거했다. 도로입구 주변의 모든 나무에서 페인트 흔적을 감식했다. 매장을 위해서는 분명히 차량을 이용했을 것이므로 혹시 차가 나무에 접촉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구릉지 경사면에 곡괭이 흔적이 몇 개 있었다. 모두 석고로 본을 떴다. 17시쯤 철수하면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식당은 범인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7시쯤 과수계 사무실에서 채취하거나 수거한 물건들에 대한 감식과 분석에 들어갔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과수팀은 다음날 경찰청에서 아침을 먹고 9시 30분에 현장으로 다시 출동해 17시 20분까지 현장 감식을 했다. 주변에 또 다른 매장된 시신이 있을 지도 몰라 폐닭을 모두 제거하고 주변 땅을 팠다. 시신은 나오지 않았고 실종자의 것으로 보이는 불에 탄 물건들이 나왔다. 바클, 가방 문양, 화장품, 지갑부분, 쭈그러든 섬유 등 이었다. 모두 수거해 사무실로 가져갔다.

다음날 국과수로부터 DNA가 실종된 박성아씨 것이라는 회신이 왔다. 실종자가 살해된 것이다. 수사는 활기를 띠었다.

 

 

2년 넘도록 범인은 오리무중

연씨 실종 후 수사팀에는 연쇄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범죄행동분석임무를 맡은 프로파일러도 참여하고 있었다. 현장 수사팀과 프로파일러가 참여한 회의에서 경찰은 실종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3명의 휴대폰이 꺼진 곳이 비슷한 지역이라는 점(1명의 휴대폰은 수원에서 꺼짐), 2명이 노래방도우미로 같은 직업이고 2명이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됐다는 점 등으로 미뤄 적어도 3명 실종자 범인은 동일범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범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동안 형사들이 탐문으로 만난 사람만 수만 명이 넘었다. 수사본부는 매일 회의를 하고 토의를 했으며 전경 헬기 등을 동원해 야산 저수지 등 후미진 곳곳을 뒤졌다. CCTV를 통해 확보한 차량 수 만대를 검색했다. 확보된 차량의 차주들도 일일이 개별 면담하고 추적했다. 범행 예상구역에서 실종시간대에 사용한 휴대폰 수 만대도 추적했다.

초조하고 지친가운데 시간은 흘러 2년이 지났다. 그러나 범인의 또 다른 행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범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른 살인의 추억이 생기는 것인가’하고 생각하니 이 경위는 분통이 터졌다.

 

대담해진 살인자

범인이 또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2008년 11월9일 김수희(가명 48)씨가 수원 당수동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됐다. 수사팀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한 달 뒤인 12월19일 군포보건소에 갔다 오던 안영옥(가명 21)씨가 보건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됐다. 언론에서도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여대생이 집에서 40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실종됐다는 사실은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언론과 각계에서 경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안산경찰서에 안씨 사건을 전담하는 수사본부가 별도로 꾸려졌다. 여기에는 94명의 경찰이 참여했다.

 

범인은 안씨 사건에서 대담해졌다. 그는 안씨에게서 아버지 명의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실종당일 저녁 19시 27분쯤 안산시 성포농협 현금인출기에서 70만원을 인출했다. 박성아씨의 시신에서 보듯 그동안 범인은 금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성포농협에서 안씨 아버지 명의의 신용카드가 사용됐고, 현금인출기 카메라에 범인이 찍혔다. 그러나 범인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쓰는 등 변장을 하고 있었다. 농협 건너편 공원 화장실에서 변장을 하고 현금인출기로 간 것이다.

 

새 CCTV에 꼬리를 잡히다

범인은 대담하게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경찰은 이제 단서를 잡았다. 수사팀은 범인의 행적 범위가 좁혀지자 곧 행동에 들어갔다. 안씨가 실종된 버스정류장에서 성포농협을 잇는 범위에 있는 CCTV에 대한 정밀 검토에 들어갔다. 구역에 설치된 CCTV는 총 4대였고, 실종 시간대에 확보된 차량은 7000여대였다. 밤을 새워 몇 날을 검색하던 수사팀에게 강한 느낌을 주는 차량 1대가 잡혔다.

 

건건동에 새로 설치된 CCTV에 에쿠스 차량이 찍혔는데 운전자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안씨 실종예상 시간은 12월 19일 15시 6분이었는데 에쿠스가 찍힌 시간은 15시 22분이었다. 차량 번호를 확인하고 차주를 추적하니 김 모씨 명의였다. 김씨는 59세 여성인데 CCTV에 찍힌 운전자는 남자였다.

 

경기청 광역수사대는 김씨의 주소지인 충남 서천으로 가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자신은 차가 없고 아들이 아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문 경찰은 ‘아’하는 외마디를 질렀다. 그 놈이다. 그동안 범인은 CCTV에 찍힌 적이 없었다. 범인은 CCTV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건동 CCTV는 최근에 설치됐을 뿐 아니라 도로확장 공사중이었고 굽은 길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형사들도 이 CCTV를 지나칠 뻔 했다.

 

잘 생긴 얼굴에 놀란 형사들

강호순(38)은 실종자들이 사라진 곳에서 불과 3~4Km 떨어진 수원시 당수동에서 축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거주지는 안산시에 있는 빌라였지만 수원 당수동에서 개를 키우다 실패하고 시내에서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종자들 휴대폰이 꺼진 화성시 비봉에서 산 적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는 트럭운전, 택배운전 경력이 있어 지리에 밝았다. 거의 범인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진 형사들은 1월 22일 강호순이 근무하는 마사지실로 가 선면조사를 했다. 그를 본 경찰은 깜짝 놀랐다. 너무나 잘 생겼다. 시원한 이마, 오뚝한 코, 큰 눈, 하얀 피부, 붉은 입술. 여자들이 쉽게 유혹에 넘어갈 타입이었다.

 

그의 휴대폰을 추적해보니 안씨 실종 후 사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안씨 실종 당일 행적에 대해서도 또렷이 답변을 하지 못했다. 1월 23일 그의 집과 축사 관리사 그리고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증거를 가져오라

1월 24일 05시10분쯤 그의 소유 차량 2대가 전소됐다. 수사팀이 도착하니 아직 휘발유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차량을 태웠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강호순을 차량방화와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집과 축사 그리고 불타지 않은 용달차량을 수색해 곡괭이와 전지가위 등을 찾아냈다. 그는 체념한 듯 안씨 살해를 자백했다. 그러나 다른 실종사건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증거를 가져오라고 주장했다. 용달차량 조수석에서 강호순의 옷가지를 수거했다. 감식하니 혈흔이 나왔고 DNA감정을 위해 이 혈흔을 국과수로 보냈다.

 

1월 25일 안씨 시신 매장 현장감식에 들어갔다. 눈이 지독히 내렸고 날씨가 매우 추웠다. 범인이 지목한 곳을 파자 곧 시신이 나왔다. 날씨가 추워서 아직 부패가 심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발가벗겨진 채 스타킹으로 목이 졸린 채였다. 몸에 장신구는 그대로였다. 스타킹 매듭 방식과 벗겨진 시신, 그대로인 장신구 등이 박성아씨와 같았다. 1명 살인범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임을 시신은 보여주고 있었다. 경찰은 박씨의 살인혐의에 대해서도 추궁했으나 그는 증거를 가져오라며 버텼다. 그러나 29일 오후 5시 30분 리베라 차량 옷가지 혈흔에서 나온 DNA가 실종된 김수희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연락이 국과수로부터 왔다.

완강히 버티던 범인은 무너졌다. 7명에 대한 살인을 시인했다. 김해영씨를 제외한 모두가 구릉지 경사면 맨 아래에 매장돼 있었다. 모두가 옷이 벗겨진 채 스타킹에 목이 졸렸고, 손은 뒤로 한 채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장신구도 그대로 있었고, 유품들은 인근에 불에 탄 채 매장돼 있었다. 5명은 강간 흔적이 있었고, 2명은 강간에 실패한 채 살해했다.

나중에 실종된 2명 피해자들의 손가락 끝 마디는 모두 전지가위로 잘려있었다. 살인마가 범행을 진화시키는 중이었던 것이다. 두부에 난 손상은 강호순이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곡괭이로 머리를 쳐 확인 살해한 흔적이었다. 김해영씨 시신은 매장 현장이 골프장으로 변해 찾지 못했다.

검찰에 송치되기 전 날 그는 경찰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다”며 피식 웃었다.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아직 못 찾은 시신이 있다는 말인가? 전국에 비슷한 실종자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더 이상 신고 들어온 것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에 송치된 그는 ‘선물’이라며 강원도 정선에서 실종된 정선군청 공무원 윤미자(가명 23)씨도 자신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시신 매장 현장에서 발견된 윤씨 사체도 다른 실종자들과 비슷한 형태였다. 더 이상 없다는 그의 살인 행각은 검찰에서 2건이 더 밝혀졌다. 실종 여성들에 대한 연쇄살인을 자행하기 2년 전인 2005년 10월 29일 자신의 부인과 장모를 방화 살해한 것이었다. 그는 선물이라며 선심 쓰는 척 하며 존속살해를 감추려 한 것이다. 강호순은 총 10명의 여성을 살해한 살인마였다.

 

같은 방향 태워준다며 유혹

강호순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들을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고는 자신도 같은 방향이라며 여성들을 차에 태웠다. 고급 승용차에탄 잘 생긴 남성의 도움 손길에 여성들은 쉽게무너졌다. 그는 여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창문을 내려두는 세심함도 보였다. 차에 여성들을 태우고는 자신이 잘 아는 화성시 비봉일대 외진 야산으로 가서는 휴대폰을 빼앗아 배터리를 분리한 후 발가벗겨 스타킹으로 양손을 뒤로 한 채 묶고는 성폭행하고 피해자의 가방에서 스타킹을 꺼내 목 졸라 살해했다. 확인 살해를 위해 차에 싣고 다니던 곡괭이로 시신의 머리를 내리치고는 매장했다.

 

폭행 일삼는 아버지

또 노래방에 새벽녘에 가서 노래는 하지 않고 도우미와 대화를 하며 환심을 산 후 데이트를 하자고 꾀어 차에 태우고는 똑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살해 후 피해자들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유류품을 모두 불태운 후 묻었다. 김해영씨의 경우에는 횟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데이터를 하기도 했지만 비정하게도 살해했다.

 

살인이 진행될수록 범행은 더욱 대담해져 피해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전지가위로 손가락을 모두 절단했으며 마지막 범행에서 보듯 그 전에는 손대지 않던 신용카드를 훔쳐 은행에서 인출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범행이 점점 더 진화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순은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어려서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심하게 구타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아내를 심하게 구타했다.

 

첫 번째 부인과는 폭력으로 이혼했으며 네 번째 부인에게는 다시는 폭행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 하사관 복무 중 첫 번째 아내를 만나 2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아내를 상습 폭행하여 5년 결혼생활을 접고 이혼했다. 이혼 직후 두 번째 부인과 교제하던 중 강간으로 화성시 비봉(실종자들의 휴대폰 전화기가 꺼진 곳)에서 1998년 겨울에 동거에 들어갔다.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셋째 아들이 태어났으나 부인이 교회에만 열심히 다닌다는 이유로 1999년 말 이혼했다. 2002년 1월 영등포에서 목욕관리사 학원에서 만난 여인과 교제하다 해어지고 2003년 3월 세 번째 부인과 만나 혼인했으나 1개월 후 별거하고 2개월 만에 이혼했다.

 

같은 해 11월쯤 다시 네 번째 부인을 만나 안산에서 개 닭 오리를 사육하고 도축해 판매하는 농장을 운영했다. 강씨는 군대에서 소를 훔친 혐의로 불명예 제대한 후 길거리에서 오징어 옥수수 장사를 하다 수익이 나지 않자 영업용 화물차 운전을 하다가 덤프트럭 운전을 배워 화성 안양 수원 인천 성남 등지에서 골재 수송을 하면서 경기 서남부 일대 지리를 훤하게 익혔다. 외환위기로 덤프트럭이 어려워지자 사고를 가장해 보험을 수차례 타고 그 돈으로 식당을 운영했으나 실패했다. 식당을 방화해 보험금을 타낸 그는 이후 수차례 보험사고를 가장해 보험금을 탔다. 이러한 보험사기는 2005년 자신의 아내와 장모를 방화`살해 해 보험금을 타내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생업 했지만 오래 못해

보험금으로 시내에 차린 마사지실이 실패하고 개 값도 폭락해 농장도 엉망이 됐다. 이러한 경제적인 궁핍은 아내와 장모를 살해해 보험금을 타려는 동기가 됐다.

그러나 경찰의 의심을 받아 방화살인 혐의로 내사를 받는 바람에 보험금 지급이 늦어지자 개 사육 농장을 처분하고 토지수용시 영업보상비를 받을 목적으로 수원시 당수동에 축사를 임차했다.

그리고 리베로 영업용 용달 화물차를 구입해 화물운송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인 행각을 벌였다. 2007년 4월 보험금 4억8000여만원을 받아 여자를 유혹할 때 유용하다는 생각에 어머니 김씨의 이름으로 에쿠스를 구입하고 안산에 연립빌라를 빌렸다. 그리고 안산시내에 상가를 구입하고, 수원시 당수동 축사에서 소 돼지를 사육했다. 2008년 3월에는 토지수용시 영업보상비를 노리고 군포시내에 있는 동군포화물터미널 뒤 편 야산에 벌통 300개를 설치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반월저수지에 원두막을 지어놓고 과일과 꿀을 판매하고 그해 12월에는 안사시내 사우나에 마사지사로 취업하는 등 생업을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살인행각을 벌이면서도.

 

사이코패스의 일상

강호순은 첫 번째 부인에게는 낭비벽이 있다고 몰아붙이며 구타했고, 금전소비를 극도로 싫어해 마지막 부인과 개 사육 농장에서 동거를 하면서 가전제품을 일절 구입하지 못하게 했다.

개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수거해 온 유통기한을 경과한 식품을 아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방전된 승용차 배터리도 중고를 구입하기 위해 전전하다 3만원짜리를 2만원에 구입하기도 하는 등 주변으로부터 구두쇠로 핀잔을 받았다.

 

여성편력 또한 심했다. 고3때 여성과 만난 첫날 성관계를 가지는 등 처음만난 여성과 쉽게 성관계를 가졌다. 한 명의 여성과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 혼인 중에도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으며 부인을 폭행했다.

 

네 번째 부인을 방화로 살해한 직후 만난 여성과 동거했으며 동거기간 중에도 호프집 여사장등 3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 2006년 가을부터 2007년 여름까지는 수원에서 옷가게를 하는 여성을 만났고 2008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는 대구에 살고 있는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등 관계를 맺었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는 안산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과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졌고, 2008년 8월부터 2009년 1월 구속될 때까지는 군포시에 사는 모 여성과 수시로 성관계를 가졌다. 동시에 2008년 12월부터 구속될 때 까지 군포시에 사는 또 다른 모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 다수의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면서도 다른 여성들과 맞선을 계속 보다가 2008년 1월쯤에는 결혼을 전제로 맞선을 본 여성을 강간해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도한 여성편력에 비해 타인과의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남성친구는 거의 없었다. 범죄심리 전문가는 강호순이 자신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의 결여, 병적인 거짓말, 후회나 죄책감 결여, 인간과 사회 심지어 가족에 대한 냉담한 태도 등으로 미루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판단했다.

 

경찰이 왜 사람을 죽였냐고 묻자 강은 사람 죽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강호순은 2009년 8월 사형판결을 받고 현재 대기 중이다.

문진헌 기자 jhmu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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