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교육

박찬석의 지리산책 : 알제리

내일신문 전팀장 2016. 8. 14. 00:00

박찬석의 지리산책 : 알제리

 

 

알제리는 북아프리카에 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1830년부터 120년 식민지로 통치했다. 프랑스는 세계각지에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지만, 두 곳은 포기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는 베트남이고 다른 하나는 알제리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승전국 패전국 할 것 없이 만신창이가 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의 문제 때문에 식민지 관리를 할 겨를도 없었고,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 감당하기 힘들었다.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세계질서를 미국 쪽으로 재편하기 위해 ‘민족자결주의’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의 독립을 도왔다.

 

프랑스가 지배한 알제리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가라고 하지만 2대전 발발 직후 전쟁을 해 보지도 못하고 독일군에 붕괴 되고 말았다. 전후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전승국가로서 지위를 향유했다. 전후 프랑스는 쌀의 보고인 베트남을 다시 지배하려 했다. 디엔비엔푸(Dien Bien Phu, 1954) 전투에서 패퇴하고 물러났다.

 

프랑스는 알제리에 국력을 집중했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 땅이다. 프랑스보다 알제리가 더 좋은 땅이라고도 한다. 프랑스(64만8천㎢)보다 알제리는 크기가 238만㎢, 3.5배이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나라이고, 이슬람 국가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알제리, 사우디, 인도네시아, 수단 순이다.

 

세계 10위이다. 면적이 큰 만큼 자원은 있는 법이다. 세계 지하자원의 톱5에 들어가는 것만도 석유(세계4위), 천연가스(세계5위), 망간(3위), 수은(3위), 은(3위), 납(5위), 코발트(2위)의 엄청난 매장량을 갖고 있다. 아틀라스 산맥이 지나고 있어 비가 많다. 오렌지, 포도, 올리브, 대추야자가 재배된다. 농산물이 풍부하다. 지중해 연안은 기후가 좋아 유럽인의 최대 관광지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120년간 프랑스가 지배를 하는 동안 프랑스 문화가 짙게 물들어있다. 프랑스어를 누구나 할 수 있고,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인들이 많다. 프랑스인은 알제리에서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창시개명도 하고, 프랑스교육을 강화하고 프랑스식 알제리의 해안지역에 교통과 통신에 많은 투자를 했다. 알제리의 근대화는 프랑스의 힘으로 이뤄졌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합병하여 끝까지 소유하고 싶어 했다.

 

알제리 독립전쟁
프랑스어로 교육을 받은 알제리의 독립운동은 결국 알제리전쟁(Algerian War), 즉 알제리 독립전쟁으로 발전했다. 알제리의 독립을 적극 반대하는 쪽은 유럽인들, 주로 프랑스 군인의 가족들과 그 후손들이다. 그들은 주로 해안지대의 도시, 수도 알지에, 오란 등 기후가 좋고 비옥한 토지를 차지했다. 100만명에 육박했다.

 

알제리 원주민인 아랍 베르베르족은 사막으로 물이 없는 곳으로 더 척박한 곳으로 몰려나갔다. 피지배민족의 저항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1954년~1962년까지였다. 독립전쟁은 치열했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NLF: Front de Liberation Nationale)은 게릴라전으로 저항했다. 프랑스 정규군은 한 때 47만명에 이르렀다. 알제리 내에 프랑스인(Pied-Noirs)과 친 프랑스 아랍군대, 하르키(Harki)가 모두 프랑스 편이 되어 알제리 민족해방전선과 전쟁을 했다.

 

프랑스의 내에서도 국론이 양분되고, 치열한 소모전이 됐다. 결국 제5공화국의 드골은 알제리의 민족해방전선(FLN)과 ‘에비안 합의(Evian Accords)’를 하고 알제리의 운명은 국민투표에 의하여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도록 하고 알제리를 떠났다. 그러나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대의 반란이 일어났고, 드골 암살단이 조직되는 등 알제리 거주 프랑스 거류민의 저항은 한동안 계속됐다. 알제리에는 지금도 프랑스문화가 짙게 깔려있고, 프랑스어는 공식 언어가 되어 있다.

 

알제리 프랑스인 알베르 카뮈
1957년 부조리철학(Absurdism)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알지에 대학을 나온 알제리 프랑스인(Pied-Noirs)이었다. 그는 정의와 휴머니즘을 주장하면서도 알제리 독립은 반대했다. 알제리의 독립이 알제리의 자유와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독립한 알제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뮈를 대접하지 않았다. 태어난 집도 유적도 업적도 말살했다.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알제리의 독립은 지상의 과제였다. 독립이 알제리에게 가져다 준 것이 무엇인가? 독립한지 50년이 지금까지 알제리는 독재로 인한 인권유린, 엄청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프랑스 국민소득의 1/3수준의 빈곤국가로 남아있고, 치안이 불안한 전형적인 후진 국가이다. 프랑스와 합병된 채로 남아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