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교육

대구 용계초등학교 배은숙 교사 방과후에도 생활지도 멘토

내일신문 전팀장 2016. 5. 10. 16:13

사람을 힘껏 살아가게 하는 것은 사실은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지금껏 나를 살아오게 한 것은 그 수많은 순간들의 합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때때로 꺼내 볼 때마다 괜히 찡해지는 코끝과 뭉클해지는 마음을 만나는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한 가운데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나와 배은숙 선생님이 있다.


수업을 마치면 나는 늘 교실에 있기를 즐겼다. 모두 집에 돌아간 텅 빈 교실에 선생님과 남아서 이야기도 하고 선생님을 도와드리기도 하는 것이 그 시절 내 오후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부터 시작해서 수업내용이며 교우관계며 평소 관심사며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단 한 번도 지겹거나 싫은 내색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선생님 덕분에 나는 꿈 많고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졸업하고 얼마 후, 동생 운동회에 갔다가 선생님을 뵐 수 있었는데 그 때 내가 그랬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처럼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거예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정은이는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 될 거야! 그럼 우리 같은 학교에 근무할 수도 있겠네.” 하셨다. 진심을 담은 선생님의 눈빛과 말투와 표정 덕분에 그 순간이 오래도록 생생하게 남아 초등학교 교사라는 내 꿈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2014년, 나는 정식발령을 받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그 해 여름, 우연히 연수에서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나를 기억하실까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드린 내 인사에 그 수많은 시간을 뛰어 넘어 6학년 때의 나의 담임선생님이 되어 내 이름을 바로 불러 주셨던 선생님...


인연이란 참 신기해서 작년, 배은숙 선생님께서 전입 오시면서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고 올해는 학년 부장님으로 동학년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지금 내게 선생님은 멋진 선배교사이시며 내가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 멘토 역할도 해 주고 계신다.


수업을 마친 오후마다 교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더라면, 선생님이 내게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는 용기를 심어 주지 않으셨다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면,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다독거려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여기 이곳에서 지금처럼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진정으로 좋아하며 살아가고 있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의 제자인 것이 평생의 행운인 셈이다.


교사가 되고 보니 좋은 교사라는 것이 정의하기도, 되기도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배은숙 선생님을 말할 것이다.


사람은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으로 힘껏 살아간다. 선생님의 눈빛과 말투에 실려 있던 사랑 덕분에 나는 힘껏 잘 살아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를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살아나가도록 늘 힘이 되어 줄 것이다.